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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60

‘n잡러’는 슈퍼맨이 아니다. (n잡 트렌드에 대한 오해와 판타지를 경계하며) - 누가 ‘n잡’이란 단어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째. 현재 나를 칭하는 직함은 총 네 가지다. 기획자, 작가, 영상감독, 연극연출가. 사실상의 밥줄이었던 IT 기획 업무는 업계 특성 탓에 이직도 잦았다. 오래 전의 취재기자 생활까지 더하면 정규직이나 프리랜서로 몸담았던 직장은 10여 곳에 달한다. 옛날 같으면 ‘한 곳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끈기 없는 인간’이 되었을 거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니 ‘n잡러’라는 듣도보도 못한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누군가가 또 그럴듯한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n잡러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강좌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나는 의도치 않은 결과론적 n잡러다.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직장생활과 창작 욕구를 발산.. 2020. 9. 24.
우린 단어들만으로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다. 여행이란 단어를 들려주었을 때 어떤 이는 호텔과 요리를 떠올린다. 또 어떤 이는 에메랄드 해변을 떠올린다. 다른 어떤 이는 화려한 놀이공원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땀에 흠뻑 젖은 배낭과 끝없는 트레킹을 떠올린다. 우린 단어들만으로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다.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냉철한 시선으로,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는, 독특한 에세이.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관습과 통념은 온전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세상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손에 쥐여주며 오늘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내일은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 book.naver.com 2020. 9. 3.
‘무난함 VS 까칠함’ 혹은 ‘강철 멘탈 VS 유리 멘탈’ “성격 참 좋다!” VS “왜 그리 까칠해?” “강철 멘탈이군!” VS “유리 멘탈이네?” 하나는 칭찬이고 다른 하나는 비난일까? 보편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아무런 불편함을 못 느꼈다면, 성격이 좋은 것이 아니라 불쾌감을 인지하는 감각이 무딘 것이다. 충격을 받을 법한 일인데 무덤덤하다면, 멘탈이 강한 것이 아니라 신경이 둔감한 것일 수도 있다. 예민해야 할 감각 신경이 고장나 있으니 당연히 충격도 덜 받고 감수성이 무뎌져 있으니 불쾌감도 덜 느낀다. 우린 곧잘 ‘성격 참 좋다’거나 ‘멘탈이 강하다’는 말을 칭찬처럼 사용한다. 어쩌면 그 칭찬에도 함정은 있을 수 있다. 부정적 감정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불필요하게 신경질적인 수준이 아니라면, 까칠하고 예민한 감각은 나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따.. 2020. 8. 28.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 힘든 비과학적 이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어른이 되어 사귀는 친구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친분 관계를 유지할 뿐, 어린 시절에 만난 친구처럼 진정한 우정을 나누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들이 연구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어릴 때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호기심이 강하고 시간도 많지만, 나이가 들면 그것에 대한 노력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결론이었다. 이에 그들은 나이가 든 이후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거리가 가까울 것. 우연한 교류가 반복될 것. 경계심을 풀고 신용할 수 있는 사이가 될 것.’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회학자들의 주장이다. 나는 사회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저 주장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2020. 8. 25.
자존심과 자존감 사이에서 균형을 잃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이 말을 잘못 새기다가 크나큰 상실감에 빠진 적이 있다. 자존심을 버리자고 지나치게 의식한 까닭에 자존감까지 깎여 나가는 줄도 모르고 인내와 양보만 거듭하는 실수를 저질렀었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던 끔찍한 기억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경계선은 선명하지 않다. 그 둘은 흐릿한 경계의 영역을 공유한다. 누구도 둘을 선명하게 정의하기 힘들겠지만 내가 경험한 둘의 차이점은 이렇다. 자존심을 버리면 기분이 잠시 불쾌할 뿐이지만 자존감을 버리면 내 기분이 어떤지도 못 느낀다. 자존심을 버리면 밥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자존감을 버리면 밥을 먹을 이유가 사라진다. 나는, 당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2020. 8. 24.
얼치기 배우 지망생 연기자 혹은 연기자 지망생들 중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간혹 있다. “배우는 경험이 중요하니까 가끔은 방탕하게 놀아보기도 해야죠.” “여자도 많이 자빠뜨려 보고.” “그래야 막장 캐릭터를 연기할 때 도움이 되죠.”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대답을 돌려준다. “살인자 역할 맡으면 꼭 사람 하나 죽여봐라.”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관습과 통념은 온전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세상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손에 쥐여주며 오늘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내일은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book.naver.com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냉철한 시선으로,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는, 진솔한 에세이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2020. 8. 21.
데미안을 다시 꺼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몇 년 만에 '데미안'을 책장에서 다시 끄집어 내었다. 스무 살 때 처음 읽었던, 그 낡은 책 그대로.며칠 전 북토크에서 '데미안'에 대해 언급했기에, 다시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북토크에서 밝혔듯이 '데미안'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망치로 머리를 계속 쿵쾅쿵쾅 두들겨 맞는 것 같았던 기분. 완전히 다른 세상과 조우했던 기억. 그리고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로 아브락사스에게 닿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헤매는 일이 곧 나의 창작활동이기도 했다. 스스로 '존재'와 '소.. 2020. 8. 19.
당신은 ‘동안’이십니까? 주름도 안 보이고 피부도 매끈한 그들이 ‘동안’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표정’이 늙었기 때문이다.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관습과 통념은 온전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세상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손에 쥐여주며 오늘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내일은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book.naver.com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냉철한 시선으로,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는, 진솔한 에세이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2020. 8. 6.
‘고생’을 권하는 사회 성공한 소수의 고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여전히 고생 속에서 헤매는 다수의 아픔은 무대 뒤편에 방치된다.미디어가 조명하고 있는 누군가의 ‘훈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현재’이자 ‘잊고 싶은 상처’일 뿐이다.고생을 전시하지 말자.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관습과 통념은 온전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세상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손에 쥐여주며 오늘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내일은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book.naver.com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냉철한 시선으로,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는, 진솔한 에세이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2020. 8. 4.
세로줄 위에 음표 세우기 중학교 2학년 시절. 즐거워야 할 음악 시간은 친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학교나 한 명쯤은 존재하는 ‘마녀’가 음악 담당 교사였기 때문이다. 심한 폭언이나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지만, 드센 외모와 성격이 학생들을 압도했다. 합창을 하다가 누군가 음정이나 박자를 틀리면 곧장 열 손가락으로 건반을 마구 내려찍으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너희들처럼 노래 못하는 애들은 처음”이라며 (영화 ‘위플래쉬’에 등장하는) 플래처 교수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독창이라도 하게 되면 지옥문 앞에 선 기분이었다. 평소엔 곧잘 부르던 애들도 워낙 긴장해서 실수하기 일쑤였다. 특히 그 나이 때는 변성기를 거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운 소리를 내기 힘든 시기였다. 마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고삐를.. 2020. 7. 17.
연필 쥐는 법 메모를 하다가 악필인 내 글씨를 보면서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난 열 살이 넘도록 연필 쥐는 법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으며, 6년간 세 번이나 손 모양을 고쳤다.인생 최대의 실수 중 하나다. 낯선 방식으로 연필을 쥘 때마다 감각이 어색하니 글씨는 더더욱 쓰기 힘들어졌다.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대로 연필을 쥐었어야 했다. 연필 쥐는 법이 남들과 다른 게 불법도 아닌데, 그냥 놔뒀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 젓가락질 못해서 밥 못 먹는거 아니듯, 연필을 잘 못 잡는다고 글 못 쓰는거 아니다.수십 년이 지나서 난 다시 내 손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대로 펜 쥐는 법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천재는 악필’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으로 위안 삼으려 했지만, 증명할 방법이 있을 리 없다... 2020. 6. 29.
기적을 믿던 때가 있었다 2018년 여름, 러시아 월드컵. 한국은 이미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거푸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놓였다. 남은 경기는 세계랭킹 1위 독일과의 승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3전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예상하고 있었다. 경기 전날 단편영화 제작팀과 회의가 있었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한마디 꺼냈다. “내일은 축구나 보면서 쉬어야겠다. 한국팀을 위해 위로주 한잔 하면서.” 거의 모두들 경기 결과를 포기했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지만,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던 후배 한 명의 의견은 달랐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이길 수 있어요. 해봐야 아는거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친구가 허무맹랑하게 보였다기보다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니,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2020.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