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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6

자존심과 자존감 사이에서 균형을 잃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이 말을 잘못 새기다가 크나큰 상실감에 빠진 적이 있다. 자존심을 버리자고 지나치게 의식한 까닭에 자존감까지 깎여 나가는 줄도 모르고 인내와 양보만 거듭하는 실수를 저질렀었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던 끔찍한 기억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경계선은 선명하지 않다. 그 둘은 흐릿한 경계의 영역을 공유한다. 누구도 둘을 선명하게 정의하기 힘들겠지만 내가 경험한 둘의 차이점은 이렇다. 자존심을 버리면 기분이 잠시 불쾌할 뿐이지만 자존감을 버리면 내 기분이 어떤지도 못 느낀다. 자존심을 버리면 밥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자존감을 버리면 밥을 먹을 이유가 사라진다. 나는, 당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2020. 8. 24.
데미안을 다시 꺼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몇 년 만에 '데미안'을 책장에서 다시 끄집어 내었다. 스무 살 때 처음 읽었던, 그 낡은 책 그대로.며칠 전 북토크에서 '데미안'에 대해 언급했기에, 다시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북토크에서 밝혔듯이 '데미안'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망치로 머리를 계속 쿵쾅쿵쾅 두들겨 맞는 것 같았던 기분. 완전히 다른 세상과 조우했던 기억. 그리고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로 아브락사스에게 닿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헤매는 일이 곧 나의 창작활동이기도 했다. 스스로 '존재'와 '소.. 2020. 8. 19.
[북토크 초대]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독특한 산문집 출간 기념 북토크에 초대합니다. (무료) 2020년 8월 8일(토요일) 오후 3시 교보문고 천호점 배움홀 강연장 임휴찬 산문집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출간 기념 북토크를 진행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북토크 참가 신청 안내 ​아래 링크 양식을 클릭해 신청해 주세요. 북토크 참가비는 무료입니다. 참석하시는 모든 분들께 북커버 디자인이 들어간 보조 배터리를 선물로 드립니다. (수량 부족 시, 일반형 보조 배터리 증정) http://naver.me/F08H5rm3<북토크 참가신청>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임휴찬 산문집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발간 기념 북토크에 초대합니다. 참석하시는 모든 분들께 '휴대용 보조배터리'를 선물로 드립니다.fo.. 2020. 7. 28.
연필 쥐는 법 메모를 하다가 악필인 내 글씨를 보면서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난 열 살이 넘도록 연필 쥐는 법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으며, 6년간 세 번이나 손 모양을 고쳤다.인생 최대의 실수 중 하나다. 낯선 방식으로 연필을 쥘 때마다 감각이 어색하니 글씨는 더더욱 쓰기 힘들어졌다.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대로 연필을 쥐었어야 했다. 연필 쥐는 법이 남들과 다른 게 불법도 아닌데, 그냥 놔뒀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 젓가락질 못해서 밥 못 먹는거 아니듯, 연필을 잘 못 잡는다고 글 못 쓰는거 아니다.수십 년이 지나서 난 다시 내 손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대로 펜 쥐는 법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천재는 악필’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으로 위안 삼으려 했지만, 증명할 방법이 있을 리 없다... 2020. 6. 29.
기적을 믿던 때가 있었다 2018년 여름, 러시아 월드컵. 한국은 이미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거푸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놓였다. 남은 경기는 세계랭킹 1위 독일과의 승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3전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예상하고 있었다. 경기 전날 단편영화 제작팀과 회의가 있었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한마디 꺼냈다. “내일은 축구나 보면서 쉬어야겠다. 한국팀을 위해 위로주 한잔 하면서.” 거의 모두들 경기 결과를 포기했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지만,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던 후배 한 명의 의견은 달랐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이길 수 있어요. 해봐야 아는거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친구가 허무맹랑하게 보였다기보다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니,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2020. 6. 24.
당신은 '동안'이십니까? ‘동안’의 세상이다. 너도 나도 나이보다 어려 보이기 위해 애쓴다. 젊은 취향의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헤어스타일을 바꿔 보기도 한다. 노화를 방지해 준다는 비싼 화장품도 사고 틈틈이 운동도 한다. 여유가 있으면 피부과에서 안티에이징 시술도 받고, 효과만 있다면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업무상 미팅이든, 친목 모임이든, 서로 ‘동안’이라고 칭찬하는 광경은 이제 일상적이다. 최근 몇 년간 만난 사람들의 90% 이상이 스스로 동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평균적으로 다들 나이보다 어려 보이니, 상대적으로는 이제 제 나이로 보이게 된 셈이 아닐까?​여하튼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을 노안으로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중엔 정말 나이보다 전혀 어려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그들은 피부.. 2020.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