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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5

얼치기 배우 지망생 연기자 혹은 연기자 지망생들 중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간혹 있다. “배우는 경험이 중요하니까 가끔은 방탕하게 놀아보기도 해야죠.” “여자도 많이 자빠뜨려 보고.” “그래야 막장 캐릭터를 연기할 때 도움이 되죠.”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대답을 돌려준다. “살인자 역할 맡으면 꼭 사람 하나 죽여봐라.”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관습과 통념은 온전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세상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손에 쥐여주며 오늘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내일은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book.naver.com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냉철한 시선으로,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는, 진솔한 에세이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2020. 8. 21.
기적을 믿던 때가 있었다 2018년 여름, 러시아 월드컵. 한국은 이미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거푸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놓였다. 남은 경기는 세계랭킹 1위 독일과의 승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3전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예상하고 있었다. 경기 전날 단편영화 제작팀과 회의가 있었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한마디 꺼냈다. “내일은 축구나 보면서 쉬어야겠다. 한국팀을 위해 위로주 한잔 하면서.” 거의 모두들 경기 결과를 포기했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지만,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던 후배 한 명의 의견은 달랐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이길 수 있어요. 해봐야 아는거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친구가 허무맹랑하게 보였다기보다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니,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2020. 6. 24.
고양이의 믿음 8년째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 손에 자라서 당연히 애교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여전히 신기하다. 배를 까 뒤집고 가슴 부위를 조몰락거려도, 턱 밑에서 목을 쓸어내리며 힘을 주고 눌러도, 꼬리를 붙잡고 빙빙 돌려도, 민감할 것 같은 급소 부위들을 마구 만지는데도 기분 좋다며 ‘갸르릉’거리기만 한다. 곁에 있는 인간이 자신을 해할 것이라는 의심이 전혀 없다.어쩌다가 발치에 와 있는 걸 모르고 발등이나 꼬리를 잘못 밟아도 얕게 ‘끄응’ 소리를 낼 뿐, 자신을 공격한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단지 실수였다는 걸 다 아는 듯한 눈빛. 완전한 신뢰관계라고 해야 할까? 예닐곱 살 꼬마 때도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자라면서 다소 방어적으로 .. 2020. 6. 22.
우물 안의 감정 - 감정의 실체를 찾아서 초등학생 때, 좋아하던 여학생 때문에 괴로웠던 적이 있다. 실패한 짝사랑이어서가 아니다. 원래 좋아하던 애가 있었는데, 다른 아이가 자꾸만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열 살이 조금 넘은 꼬마는 고민에 빠졌다.‘나는 바람둥이인가?’경직된 도덕률에 길들여졌던 탓이다. 관습과 미디어는 ‘일편단심’을 미덕으로 칭송했다. 특히나 어릴 적의 통속 드라마들은 이별이나 이혼을 요구하는 자를 악인으로만 묘사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야 내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그로부터 약 20년 후, 그 꼬마는 또 다른 감정에 직면한 적이 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와 술을 마시던 중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이런 애가 내 여자친구면 좋겠다.’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그 후배가 나쁜 여자였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2020. 6. 17.
당신은 '동안'이십니까? ‘동안’의 세상이다. 너도 나도 나이보다 어려 보이기 위해 애쓴다. 젊은 취향의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헤어스타일을 바꿔 보기도 한다. 노화를 방지해 준다는 비싼 화장품도 사고 틈틈이 운동도 한다. 여유가 있으면 피부과에서 안티에이징 시술도 받고, 효과만 있다면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업무상 미팅이든, 친목 모임이든, 서로 ‘동안’이라고 칭찬하는 광경은 이제 일상적이다. 최근 몇 년간 만난 사람들의 90% 이상이 스스로 동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평균적으로 다들 나이보다 어려 보이니, 상대적으로는 이제 제 나이로 보이게 된 셈이 아닐까?​여하튼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을 노안으로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중엔 정말 나이보다 전혀 어려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그들은 피부.. 2020.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