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몇 년 만에 '데미안'을 책장에서 다시 끄집어 내었다. 스무 살 때 처음 읽었던, 그 낡은 책 그대로.
며칠 전 북토크에서 '데미안'에 대해 언급했기에, 다시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북토크에서 밝혔듯이 '데미안'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망치로 머리를 계속 쿵쾅쿵쾅 두들겨 맞는 것 같았던 기분. 완전히 다른 세상과 조우했던 기억. 그리고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로 아브락사스에게 닿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헤매는 일이 곧 나의 창작활동이기도 했다.

스스로 '존재'와 '소통'에 관해 탐구하며 글을 썼다고 얘기했는데, 적어도 그 '존재'에 대한 탐색은 데미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토크를 끝내고 스스로 돌아보니, 막상 데미안의 디테일한 내용들을 많이 까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왕 생각난 김에, 조금 더 견고해지고 싶은 욕심에, 이 낡은 책을 꺼내들었다. 서점에 가보면 깔끔하고 세련된 리커버판이 많이 보이지만, 이 책을 그대로 읽는 것이 스무 살 때 받은 느낌을 더 잘 살려줄 것 같아서다.
헤르만 헤세는 또 다시 나를 괴롭힐 게 뻔한데, 내 손이 어느덧 책장을 넘기고 있다.

* 이 책의 출간 연도를 확인해보니 1986년이다. 실제로 내가 처음 읽었던 시기보다도 한참 앞서 있다. 이 책을 어디서 구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히 어릴 때부터 집에 있던 책 같지는 않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조그만 중고책방에서 구했든지, 아니면 친구 아버지의 서재에서 빌려온 후 안 돌려줬든지. 전자이길 바라지만 왠지 모르게 후자일 것 같다는 의심이 떠나지 않는다. 빌리고 안 돌려준 책이 인생을 바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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